수원시 영통과 용인시 수지의 명품신도시 광교

광교의 대표 좋은 보청기 광교덴마크보청기

좋은 보청기 광교덴마크보청기를 선택하시러

멀리서 찾아오시는 고객님 감사합니다

 

#수원북부순환도로 개통으로 파장동, 율천동, 조원동, 송죽동 등 수원시민들께서

광교덴마크보청기를 찾아오시는 길이 더욱 편해졌습니다.

 

수원북부순환로 개통으로 더욱 가까워진 광교덴마크보청기

파장동쪽에서 #수원북부순환로를 진입, #장안톨게이트를 지나

#동수원IC 인근에서 빠져나오면, 광교 4거리로 바로 오실 수가 있습니다

 

조원동, 송죽동 등 #수원종합운동장, #장안구청 근처에 사시는 분들도 ...

이제는 조원IC를 이용해 5분이면 좋은보청기를 선택하러 오실 수 있습니다

 

어디에 사셔도 광교덴마크보청기까지 10분도 안걸리는 시간에 도착하실 수가 있습니다

 

#수원북부순환로 개통으로 가까워진 만큼 여러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적확한 청력검사와 피티으로 잘 듣는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나이들면 제일 큰 걱정거리중 하나는 치매에 대한 불안일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를 보면 운동이 치매에도 도움이 된다는 결과입니다

 

뇌와 운동의 관련성
운동은 근육이나 뼈뿐 아니라, 뇌도 건강하게 한다.

연구 1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 연구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운동을 하면 뇌 속에서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이 발견돼도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팀은 2003년부터 4년간 65세 이상의 노인 1700명을 대상으로 인지능력을 검사하고, 사망한 뒤에는 부검을 통해 뇌를 살폈다.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이 있어도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공통점은운동을 자주 함 ▲TV를 적게 봄 등이 있었다.

연구 2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운동이 인지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참여자들은 실내자전거 기구로 10분간 운동했다. 그 결과, 10분이란 짧은 시간만 운동해도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뇌 부위인 전두엽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3
호주 캔버라대학 연구팀이영국스포츠의학학술지에 밝힌 바에 따르면 유산소운동은 전반적인 인지능력을, 근력운동은 기억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줬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가장 효과 있는 운동 시간은 1회당 45~60, 강도는중간~강함의 사이였다.


출처 :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7/2018030700852.html

 

 

난청으로 타인과 대화가 불편하여 실내에서만 생활하시는 부모님께

자유롭게 활동하고 운동할 수 있게 해주는 보청기를 선물하십시요!

 

100세 시대에 남은 여생을 건강한 삶으로 살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은 후손들의 의무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장수시대와 긴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은퇴 후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이상에 이르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내야 할까?

60대후반의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남은 노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성찰하는 내용입니다

이책을 통해서 다 같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69세의 뇌교육 창시자 이승헌 총장이 전하는 인생 2막을 위한 새로운 선택!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했다>

 

나는  책의 집필을 시작할 무렵 신문에 소개된 호서대 설립자 강석규 박사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글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젊었을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덕에 65세때 당당한 은퇴를   있었죠.

그런 내가 30 후인 95 생일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이제  살았다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  

앞으로 30년을    있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 20년을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유는   가지….

10  맞이 하게  105번째 생일 

95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강석규 박사는 95  자신에게 노년의 설계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후회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기의 삶을 적극적으로 설계하여

100  때에도 강단에 서서 인생에서 배운 지혜를 세상과 나누다가 103세에 돌아가셨다.

 

 선택하는 삶은 다르다. 120살을 선택하면 인생의 후반기가 달라진다.

 

나는 강석규 박사의 글을 읽으면서 인류 역사 최고의 장수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비극이  수도 있고 축복이  수도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은퇴 후의 인생이 전반기 인생의 덤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꿈이나 계획을 갖지 않으면 진짜 그렇게 살게 된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기가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준비하면

전반기보다 훨씬  충만하고 보람있는 인생의 황금기로 만들  있다.

인생의 후반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설계할  있는 방법은 자신이 몇살까지 살지를 미리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뚜렷한 목적과 계획을 갖는 것이다

살다보니 90 , 100 세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나는 이런 목적과 꿈을 갖고 120 세까지 살겠다고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선택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120 살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통해  적극적으로 건강관리를 하게 되고긍정적인 생활습관을 기르며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게  것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며  나은 인간이 되어갈 것이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 120세까지 인간이 사는 것이 재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아무런 준비없이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경우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강석규박사님의 얘기처럼 95세의 나이에도 105세가 되었을때의

내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한다면 결코 헛된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70대!

난청으로 이웃과 친구와 더불어 살지못하고 소외되어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외로움은 우울증, 치매 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됩니다

캐나다 모대학의 연구결과를 보면 주기적인 운동보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친근한 교류가 건강에 더욱 좋다합니다

90세에 주역, 명리학 강의를 듣기위해 당센터로 보청기를 하러 오신 아버님도 계십니다.

살다보니 100세가 아니라 목표를 이룬 100세로 ...

이제부터라도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삶을 보람되게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난청으로 의심될때 상담을 받아보세요 시원하게 정리해드립니다

문의전화 : 031-257-9898

대한청각학회와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인정하는

청각사 원장 송재범

 

 

오늘은 난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해 힘내시라고 

어려서 후천적인 난청으로 전농(全)의 장애를 극복하고

화단의 거목으로 우뚝 서신 운보 김기창 화백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합니다.

 

듣지 못하면 울부짖고 싶고

아무거나 때려 부수고 싶어집니다

그럴때마다 터질듯한

가슴의 응어리들을 그림에 쏟았어요

지금은 내 자신이 귀 먹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을 때가 있어요.

귀가 들렸다면 오늘의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고통도 없지 않았지만 폐쇄된 소리의 공간이 있었기에

한 작업에 몰입, 집중할 수가 있었어요'

 

한국 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화백의 회고 어린 말씀입니다.

 

1914년 서울 운니동에서 태어난 김기창화백은

승동보통학교에 입학한 일곱 살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신경이 마비되어 후천성 난청으로 전농(全聾)이 되었다.

 

그는 열두 살에 복학했으나

강의를 듣지 못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책에 새, 꽃, 사람, 개 등을 그렸다.

 

아들의 소질를 알아본 어머니는

학교를 졸업 하자마자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사사 하도록 권했고

이는 그의 일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1931년 선전에 판상도무(板上跳舞) 라는 널뛰기 소재의 작품으로

입선해 일찍이 대화가의 소질을 보였다.

 

당시 신문에는 귀먹고 말못하는 18세 소년이

선전에 입선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어려운 젊은 날을 보내야 했으나,

 그는 고난을 딛고 선전에 입장과 특선을 거듭

 추천작가가 되는 등 승승장구 했다.

 

결국 오늘날 한국화단을 빛낸 인물로 우뚝 서게 되었다.

 

훗날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운보의집을 세우고

 그 옆에 온양 미술관과 전시관, 운보공방등 문화공간을 조성했고,

이중 운보공방은 농아들에게 도자기 기술을 가르쳐

 자립기반을 닦도록 한 곳으로 청각 장애인의 권익옹호에 앞장선

운보의 자상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후천적인 난청인이 된

그는 모든 고난에도 굴복하지않고 꿋꿋하게 맞서

오늘날의 화단의 거목이 된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가 귀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러한 시련을 극복하며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지 안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운보라는 거목을 만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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